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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방에서글을읽으매

[커미션] 사고 실험


* 로딘님께 받은 커미션입니다.


[별달]





사고 실험. 요즘은 눈을 감으면 생각에 사로잡힌다. 눈꺼풀 뒤로 깊은 사고가 비치는 상상을 한다. 색은 언제나 검다. 붉은색을 품고 있는지 모른다. 잔상이 그런 기억을 남기는 듯하다. 그러나 내가 상상하는 이미지는 언제나 하늘이다. 해가 저물어 창공 너머의 깊은 푸름을 담고 있는 검은 어둠. 별빛이 많이 비칠 것이다. 상상의 공간이 언제나 사막인 탓이다. 사막에 내린 밤하늘은 기실 언제나 많은 별을 품고 있다. 내가 정의 내린 사막의 밤하늘은 그런 식이다. 글과 영상과 사진을 통해 접한 탓에 이미지는 편견에 의해 편집되어 조야하고 실감을 느끼기 어렵다. 액자의 틀 속에 담길 수 있을 만한 완벽한 구도를 갖춘 인공적인 장면이 대개 상상의 시발점이다. 나는 언제나 그곳에 인물 한 폭을 세운다. 그 단계에 이르는 순간 상상 속에 선 내 실체는 눈을 뜬다. 그를 더 제대로 마주하기 위해. 더 자세히, 깊이 그를 읽어내기 위해.

그는 나와 마주한 채 나를 보며 웃는다. 나는 그 웃음에 언제나 내면 무언의 어둠이 부서지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그는 별이 많이 든 하늘을 등에 진 채 웃으며 서 있는 한 폭의 장면이 된다. 그 이미지가 요즘 내 상상에 매번 등장한다. 박제되어 기억 속에 영영 보존되어 가고 있다. 내 사고 실험의 전부가 되어간다. 나는 그 이상 사고를 이어갈 수 없다. 애초에 가정하던 단계에조차 이르지 못한다. 사고 실험을 통해 알아내려던 애초의 목표를 잃어간다. 애초의 목표. 애초의 가정. 그가 여태 살아있었다면 과연 내 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하는 소모적인 가정법들.

상상으로 재현된 그의 풍경에 스며든 웃음을 읽을 때마다 한계 없는 슬픔의 무게를 가늠한다. 눈물의 깊이를 재본다. 그의 죽음에 관련된 나의 기억에는 긴 시간을 거친 서사가 담겨있다. 서사에 담긴 모든 세월을 지난하다 말할 수 있다. 아니,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의 죽음에 관련하여 나는 일말의 죄책감을 갖고 있다. 그의 죽음을 충분히 슬퍼하지 않았다는 죄의식. 당시 내 세계의 서사는 점차 더 큰 세계로 뻗어 나갈 기로에 서 있었다. 과거의 경험을 환기시키던 낯설고 새로운 모든 경험들에 다소 흥분하고 있던 상태였노라 기억한다. 나는 많은 일들로 정신이 없었다. 세월이 겹을 벗겨내며 드러낸 새로운 면면을 매일 접하며 넋이 빠져있었다. 스스로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기 시작했다. 나는 나 자신 외에 아무것도 몰두하지 않았다. 그의 부음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다만 며칠 후 맞이할 내 생일 기념 파티에 그가 올 수 없다는 사실에나 실망감을 느꼈다. 그게 감상의 전부였다. 나는 꽤 오랫동안 그 이상 그에 대해 특별한 감상을 반추하지 않았다.

작년 초부터 기회 닿는 대로 그의 옛집이 있는 장소를 찾아가고 있다. 집은 주인이 바뀌어 다시 방문할 수는 없다. 나는 그저 주변을 서성이며 추억이 되감기는 장소를 걸음 해볼 따름이다. 사소한 추억이 서린 곳은 생각보다 많았다. 걸음을 옮기는 대로 기억이 피어나는 경우도 있었다. 집중하자 무의식의 경계에서 빛바랬던 기억들이 느리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농구 코트가 있던 자리에는 상점 건물이 세워졌다. 건물이 너무 완고하고 그 자리에 꼭 들어맞아 보여 기억하던 모습을 떠올리기가 어려웠다. 나는 결국 눈을 감고서야 그곳을 추억할 수 있었다. 나와 그는 운동을 썩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하늘이 개는 날이면 종종 그곳으로 가 농구 경기를 구경하곤 했다. 그는 나와 꽤 잘 놀아주는 편이었지만 이럴 때는 그가 넋 놓고 앉아있는 시간을 기다려줘야 했다. 나는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그가 방해받지 않고 제 시간을 누리고 싶어 하는 기색을 쉽게 알아차렸다. 내가 말을 걸 때 그가 대화를 거절한 적은 한 번도 없었으나 난 그가 그런 기색을 보일 때 그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그의 옆에서 나는 외롭지 않았다. 외려 그가 그런 순간에조차 나와 함께 있어 준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꼈다. 내가 필요하구나 싶은 실감은 없었으나 적어도 그의 개인적인 일면을 공유 받는다는 느낌을 받았던 듯싶다. 난 아주 평범한 아이였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말이 줄고 오롯 혼자만 남았다는 듯 당신의 주변마저 내가 끼어들 틈 없이 밀도 높고 무거운 무언가로 채워버리는 그를, 그 당시 나는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다. 당시 내 나이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아주 평범한 아이였으므로 그가 그런 순간에 접어들 때 보였던 표정과 깊어지던 눈빛의 의미를 헤아리지 못했다. 눈길이 정처를 잃고 항시 입매에 드리워지던 호선이 무너져 내려 그의 얼굴은 가면을 쓴 듯 무심하고 일견 무서워 보이기도 했다. 그 표정이 의미하는 바를 읽어낸 건 아주 후의 일이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어느 날부터 거울을 마주한 채 비친 상에서 종종 기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기시감의 정체는 어느 순간 불현듯 깨달았다. 잠에 들기 전 습관적으로 그의 얼굴을 떠올리다 얼결에 떠오른 사실이었다. 내가 나의 얼굴에서 읽어냈던 표정이 그 시절 그가 내보이던 표정의 결과 언뜻 닮아있음을. 그 사실을 떠올린 순간 도로 눈을 뜰 수밖에 없었고 그 후로 지금까지, 피로감을 느끼거나 고독에 짓눌릴 때 특히나 나는 거울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다. 그와 얽힌 추억의 현신은 이렇듯 끈질기게 나의 주위를 맴돈다.

가정은 끝없이 이어진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나와 그의 관계는 어떻게 성장했을까. 내 어릴 적 성장의 한 편을 그와 떼어놓을 수 없다. 기억이 닿는 유년시절의 추억은 거의 전부 그와 함께한다. 사실 그 자체만으로는 큰 의미가 없었다. 그를 떠올리고 추억의 깊이와 무게를 짚어가고자 하자 그가 내 무의식 위에 존재를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그의 존재로 구축된 세계를 채굴한다. 그의 옛집을 찾아갈 때마다 나는 뜰에서 돌멩이를 하나 줍는다. 그러쥔 손을 주머니에 넣고 집 오는 길 내내 돌멩이를 손에서 굴린다. 그의 세계는 내 방 한구석에 엉성하게나마 제 모습을 실현하고 있다. 그 헐거운 돌무덤을 바라보며 나는 계속 계속 그를 떠올린다.

 

당신이 만약 지금의 나와 대화한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여전히 보호자이자 유일한 친구가 되어달라는 나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줄까. 당신은 내 말이 의미하는 바를 쉽게 파악하겠지. 내게 유일함이란 그리 가볍게 소용되지 않는다는 걸, 당신은 금세 알아차리겠지. 당신은 언제나 나보다 나를 더 잘 파악하곤 했으니까.

 

사소한 소리가 방구석을 두드린다. 돌무덤이 무너져내린다. 휴대전화 발신인은 달갑지 않은 이를 가리킨다. 기어이 시간이 임박했다. 창 너머 경적소리가 걸음을 채근한다. 나는 신발을 고쳐 신고 돌멩이를 하나 그러쥐고 계단을 내려선다. 겨울 오전의 바람결에서 밋밋하고 시린 냄새를 맡는다.

 

***

 

어느 정도 예견된 삶을 살아간다는 실감은 받아들이기도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내 삶은 틀 지워져 있었다. 나는 족쇄를 달고 태어났다. 내 족쇄는 아버지의 이름과 명성이다. 내가 사람 구실을 할 만하다 인정될 만큼 성장하기 전까지 나는 내 이름보다 그의 이름을 더 자주 들었다. 자라는 내내 그의 이름은 언제나 내 귓가를 맴도는 듯했다. 넌 링고 스타의 아들이야. 내게 그의 이름을 길어 올리는 이들은 마치 내게 평생 유의해야 할 가치를 새겨준다는 듯 그 사실을 강조했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그 사실에 갇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이 주입한 사실을 부정하기 위해 나는 되려 끊임없이 그 사실을 상기했다. 강박은 저항할수록 더 단단히 줄기를 감아올린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던 시기가 길었다. 최근에야 비로소 동의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그 강박의 위력을 무효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지금에 와 과거를 돌이켜보니 불행한 시기가 너무 길었다는 느낌이 든다. 달라져야 한다. 이른바 도약의 시기에 이르렀다는 것이 형언할 수 없는 실감으로 불현듯 닥쳐왔다. 달라지는 방법을 알고 있으니 더 이상 게으르게 굴어선 안 된다. 마치 드럼 스틱을 쥐듯 주머니 속 돌멩이를 가볍게 쥐고 차고에서 시동 걸린 채 나를 기다리는 트럭에 올라탔다.

 

어디로 가는 거예?

바다.

년 만에 아버지와 다시 만났다. 그간 매체를 통해 접했던 그는 눈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게 썬팅된 선글라스를 쓰고 다녔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눈을 마주치기 어렵다는 사실은 굳이 마주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묘한 안도감을 느낀 것에 나는 일말의 불안감을 느꼈다.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은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최면일 뿐일까. 어쩌면 영영 그의 그늘을 걷어내지 못할지도. 도록도록 손안에서 돌멩이가 구른다. 밖의 풍경은 정오의 빛을 받아 희게 부서지고 너무 눈부셔 바라볼 수 없는 잔상으로 스친다. 그 어디에도 눈을 둘 수 없으면 시선이 향할 곳은 어디인가. 나는 눈을 감고 다시 상상을 되새김한다. 그의 얼굴이 보이고, 서글픈 미소를 짓거나 지친 표정으로 낯빛이 어두워지면 그와 나 사이를 잇는 가는 실이 손에 감겨있는 것 같기도 하고.

바닷가를 가는 이유는 묻지 않아도 알 만하다. 그의 기일 때마다 연례행사처럼 반복되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아버지는 깊은 뜻이 있다는 듯 모호한 말투로 바닷가에서 조의를 표한다고 답하곤 했다. 왜 바다일까 하는 의문에 앞서 그와 관련해 내가 끼어들 틈 없이 아버지와만 이어진 비밀이 있다는 사실에 나는 불쾌함을 느꼈다. 감정이 마치 공격을 하듯 내게 전면으로 들이받혔는데 그 충격으로 얼떨떨한 동시에 그런 감정을 느꼈다는 사실에 괴이함을 느꼈다. 내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무언가 정리되는 한편 또 다른 혼란이 수면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아직 이 감정들의 정체를 제대로 밝혀내지 못한다.

어디로 가든 바다가 쉽게 보이는 곳이다. 완전히 가닿기도 전에 내린 창문 틈으로 바닷바람이 흘러들어온다. 바다 냄새가 순풍 위로 넘실거린다. 포장도로를 벗어나 차체가 심하게 덜컹거리자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한다. 오늘 아침 잠에서 깬 후 한 끼도 제대로 먹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깨어난 것과 동시에 망각된 꿈 때문에 출처 모를 초조함에 사로잡혀 오전 내내 드럼 세트 의자에 앉아 있었다. 드럼 세트에 둘러싸일 때 실감하는 좁은 공간감은 항상 내 불안을 쉽게 잠재웠다.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면 더 효과가 높아진다는 속설을 믿어(아마 플라세보 효과겠지만) 나는 그 공간을 은신처로 삼기로 했다. 사람이 이룰 수 없는 어떤 실감을 그 공간이 만들어냈다. 누구도 그 같은 기운을 자아내지 못하리라. 내게 처음으로 그 공간을 추억으로 빚어낸 이는 이제 내 과거 모든 세계가 한데 섞인 신화로 화했으니. 그 정도 위상을 가지는 이를 앞으로 영원히 만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안다. 신화는 대개 죽음의 서사에서 비롯된다고 하며 내 경우엔 정확히 그의 죽음이 단초가 되었다. 나는 그 모든 세월 기록의 인과에서 여지를 읽으려 들지 않는다. 내 안에 들어선 견고한 한 세계를 의심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차에서 내린 후 나와 그는 한 마디도 나누지 않는다. 그게 자연스러워 보인다. 부자 관계는 돈독해지지 않는 만큼 소원해지지도 않는다. 그와의 사이에 서면 공기가 정체된다는 느낌이 든다. 관계의 의미가 더 진전하지도 퇴색되지도 않고 그대로 정지해있다는 느낌. 나는 어쨌든 그를 여러 매체를 통해 지속적으로 접했고 그는 다행히도 내 존재를 잊지 않고 상기하고 있던 듯 싶다. 오는 길에 내리쬐는 볕이 뜨겁게 느껴질 만큼 하늘이 맑았는데 이곳은 사방으로 낮게 깔린 구름 뒤로 해가 숨었다. 곧 비라도 내릴 태세로 공기 중에 습기가 적이 들어차 있다. 저 멀리 파도가 거칠게 밀려들다 하얗게 부서지는 게 보인다. 날씨가 궂어지고 있다는 것을 파도의 높이를 보며 깨닫는다. 나는 그를 돌아본다. 결정을 내려주길 바라는 의도로서 말하지 않아도 눈치챌 것이라 기대한다. 그는 오늘 처음 나와 눈을 마주치며 내뱉듯 퉁명스레 말을 건넨다.

쉴 곳이 필요하냐?

마치 친구에게 건네는 듯한 말투에 내심 안도감을 느낀다.

 

 

가득 들이부은 뜨거운 우유가 쉽게 식지 않아 잔을 들고 창을 열어 앞에 선다. 찬 기운을 만난 머그에서 흰 김이 피어오르며 짙게 어룽거린다. 밀크티를 만드는 방법도 나는 그에게서 처음 배웠다. 뜨거운 물을 조금 부어 마치 원액을 짜내듯 홍차 티백을 진하게 우려낸 후 마찬가지로 뜨겁게 데운 우유를 가득 붓고 각설탕 세 조각을 넣어 잘 저어준다. 너무 달지 않아요? 그가 만든 밀크티를 마실 때마다 혀가 절여지는 듯한 단맛에 인상을 찡그리곤 했다. 이 정도는 되어야 하루를 살아갈 힘이 나지. 그럴 때마다 그는 항상 내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웃었다. 각설탕 세 조각의 단맛으로 하루에 두 번씩. 레시피를 배워와 혼자 만들 수 있게 됐을 때 나는 그 룰을 바꾸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과하게 단 맛에 천천히 익숙해졌고 어느 날 홍차 티백을 우리고 뜨거운 우유를 붓고 각설탕 세 조각을 넣는 그 모든 과정이 그와의 기억을 되새기고 감상하기 위한 의식의 절차처럼 느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곳곳에 추억이 서려 있었다는 말이 서늘하고도 압도적으로 다가오던 순간이었다. 머그를 입에 대고 찬 바람에 식은 밀크티를 맛본다. 각설탕 세 조각의 단맛은 여전히 입맛에 맞지 않고 입천장과 혀 위에서 겉돈다. 이 정도는 되어야 하루를 살아갈 힘이 나지. 문장이 머리 위로 가루처럼 떨어지는 기분이 든다.

하늘이 너무 흐려 해가 지자 사방이 빠르게 어두워진다. 펜션 밖으로 바다가 가까워 창을 열면 소리와 냄새와 바람 역시 물씬 밀려든다. 어둠에 잠긴 바다에서 이제 파도가 철썩이는 소리만이 도드라진다.

아버지는 몇 시간 째 해변에 서서 등을 보인 채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마치 내가 이룬 이 벽 틈으로 함부로 끼어들지 말라는 듯한 자세로. 견고하고 답 없이 메아리만 되울릴 듯한 벽처럼 등을 보이고 서 있다. 왜 굳이 나를 데려왔을까? 그 전까지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그와 나와 아버지를 잇는 관계의 어떤 서사가 지금 불현듯 힘을 얻어 솟아오르는 기분이다. 내가 왜, 아버지와 그의 관계를 표상하는 풍경을 보고 있어야 하지? 인터뷰어에 답변하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라디오를 통해 들었을 때와 같은 불쾌함이 스멀거리며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손에 쥐었던 머그를 탁자에 내려놓고 외투를 급하게 걸치며 방을 나선다. 나를 밀어내는 듯한 그 풍경을 그저 목도만 하고 싶지 않다.

모래를 밟는 발이 푹푹 빠진다. 아버지는 여전히 같은 자세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그의 옆에 서서 그가 바라보는 지점에 시선을 던져본다. 검은 바다. 밤이 되자 구름이 걷혔다. 만월로 차오른 달이 오롯한 밝기로 물결에 희미한 빛을 비춘다. 감상적이기 쉬운 풍경이다. 아버지는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던 걸까.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본다. 내내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은 채다.

못 본 사이 많이 컸구나.”

…….”

기일이 돌아온 지 올해로 벌써 칠 년째다.”

저는 아버지가 삼촌이랑 같이 있는 걸 많이 보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내 눈으로는. 아버지는 그와 어떤 추억을 쌓았어요?

돌연 목이 메어 말을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른다. 그가 죽었을 때 아버지는 어디에 있었어요. 어째서 그의 죽음을 막지 못했어요. 나보다 더 가까운 사람. 나보다 더 그를 잘 이해하고 읽어낼 수 있는 사람. 그를 목매게 한 죽음의 끈을 오로지 아버지만이 끊어낼 수 있었어요.

그의 부음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다만 며칠 후 맞이할 내 생일 기념 파티에 그가 올 수 없다는 사실에나 실망감을 느꼈다. 그게 감상의 전부였다. 나는 꽤 오랫동안 그 이상 그에 대해 특별한 감상을 반추하지 않았다.

거짓말이다.

소식을 들은 날을 나는 잊지 못한다. 모든 것들을, 그저 스쳐 지나간 세세한 것들조차 나는 여전히 돌이킬 수 있다. 잡고 들었던 수화기의 줄이 느리게 흔들리던 것. 스피커의 잡음이, 부음을 전하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내 안에서 무겁게 울리고 되울리며 끝없이 메아리치던 것. 시야가 까마득 잠기고 울컥대며 쏟아지는 눈물이 호흡을 모두 잡아먹은 것. 모든 기억과 기록이 기억에 새겨지고 꿈으로 무수히 반복되고. 나는 오래도록 그 순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밀어내야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기억을 접고 접어 지우는 방식으로 버티기로 했다. 그의 죽음에 관련하여 내가 가진 죄책감은, 충분히 슬퍼하지 않았다는 스스로의 증언에서 비롯되고. 그 날 이후 나는 오래도록 그를 잊고 지냈다. 잊고 살기로 했다. 부재로 인한 두려움에 짓눌리고 싶지 않았다. 강박은 저항할수록 더 단단히 줄기를 감아올린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던 시기가 길었다.

그는 네 대부였다.”

알아요.”

네게 너무 큰 슬픔을 겪게 했다는 것을 안다.”

…….”

너를 볼 용기가 오래도록 들지가 않았어. 나 스스로를 추스리는 것에 이토록 긴 시간이 걸릴 줄은 정말 몰랐구나.”

결국은 그와 나 모두의 슬픔인 것이다. 작년에야 겨우 그의 집을 찾아갈 용기를 냈던 나와 올해가 되어서야 나를 불러 같이 바닷가로 나설 것을 결심한 그가 결국은 같은 궤도에 잡혀 돌고 도는 행성이었던 것이다. 기어이 울음이 터지고 만다. 눈물이 흐르기를 내버려 둘 수밖에 없다. 파도의 끝에 매달려 말려들었다 다시 밀려와 부스러지는 모든 소리들이 상상에서 보던 사막의 이미지를 불러들인다. 습한 감정들이 이미지에 상상을 덧씌우고 있다.

포말이 이는 젖은 모래사장 위에 그가 서 있다. 나를 등진 채 바다를 바라보다 뒤를 돌아 나를 바라본다. 나와 눈이 마주치고 내게 미소를 짓는다. 마주 보며 나는 그를 향해 슬픈 미소를 짓고.

아버지는 바다를 보았을까 그를 보았을까.

아버지에게서 비롯된 모든 것을 부정하고 밀어내고자 해도 결국은 영영 그가 드리운 그늘을 벗어날 수 없을까.

이른바 도약의 시기에 도래했다. 정작 도약을 위한 발판을 잃은 채로.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뒷걸음질친다. 손가락 사이로 주머니에서 뒹굴던 돌멩이가 굴러들어온다. 나는 견딜 수 없어 돌멩이를 던지고, 되는대로 바다 편으로 냅다 던지고 바다로부터 달음질친다. 갈 길이 없어 방향을 잃은 채로 감은 눈을 뜨지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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